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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함'에 열광하며 그것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라고 믿었었다.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국 인간은 '관계'속에서 존재 의미를 찾을수 밖에 없이 생겨먹었고(사람 人 자를 보라), 그걸 인정하고 나면 어느 날, 마음이 춥고 배고플때 가고 싶은 나만의 심야 치유 식당을 갖고 싶어진다.

도시는 원초적 외로움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외롭다, 외롭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정작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옆집의 문을 두드려볼 엄두는 못 내고, 친구에게 선뜻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쿨한 관계가 현대인의 기본 태도니까. 그런데 그러다가 얼어죽게 생겼다.

인생은 참 어렵다.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열심히 인생을 살지만 무엇이 훌륭한 인생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란 참으로 난해하다. 보통 사람들 속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찍어누르며 자신의 성공만을 향해 나아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패배감에 사로잡혀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 사진출처: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cont=6070&title=003004 

저자인 하지현이란 정신과 의사는 참 별나다. 최고 대학의 의대를 나와 정신과 의사를 하는 사람이 (아버지가 영화감독이라서인지) 이 정도 글재주를 갖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인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높다고 하니 정말 신기하다. 그의 책에서 실제로 이 구절을 발견하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열심히 소통했다고 믿었지만 막상 그가 얘기하려고 했던 의도는 반도 전달되지 않았다. 진정한 소통은 말로 지식을 우겨넣는 것도, 이해했다는 자백을 받는 것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깨닫게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 삶의 방식을 바꾸게 하는 것, 마치 자기가 결정해서 하는 것이라 여기고 다른 곳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성공이다.  - p100


심리학과 소통을 연결하다니..정말 탁월한 걸. 보통의 심리학 서적이 어려운 전문 용어나 상담 사례들로 구성된 것과 비교해 이 책은 '소설같은 구성'으로 확연히 차별화된다. 전직 정신과 의사인 '철주'라는 인물을 내세워 그가 대학가 뒷골목에 ‘노사이드’라는 바를 차리면서 불면증을 앓고 있는 민수, 폭식증을 앓는 미수, 발기부전을 겪는 요리사 상진, 징크스에 걸린 4번 타자 태조, 40대 임원으로 공황장애에 걸린 동우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펼쳐나간다. 실제로 자신이 자주 들르는 'strange fruit'이라는 곳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 이 곳은 마치 하루키의 재즈바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듣는 그런 기분이 든다.

오래된 음악이 울려퍼지는 '노사이드(No Side)'는 바라기보다는 선술집이나 심야식당 같은 분위기로 단골들만이 찾을 뿐 장사가 그리 될 듯해보이지 않는 곳이다. 이곳을 찾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게 전직 정신과 의사인 철주는 자신만의 처방전으로 직접 그들의 삶에 들어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기존 의료 프레임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이는 작가 자신이 느낀 의료의 한계를 해소하려는 노력인 듯 보인다. 

다소 생소하기도 하지만 인간 심리에 대한 다양한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들도 재밌다. 패러독시컬 인텐션 테크닉(Paradoxical Intention Tech-Nique)이나, 버자이나 덴타나(vergina dentata)나 스티그마(stigma), 징크스라는 것이 어떤 새 이름에서 유래했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딘가 미진하고, 삐걱거리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성공을 해도, 많은 연봉을 받아도, 집을 장만해도, 원하는 것 이상의 성취를 해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문제는 너.무.열.심.히.살.았.다.는.것. - 프롤로그 p.9

일직선으로 뚫려 있는 경부고속도로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의 삶이 보잘것없고 가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고속도로로 가다가 국도로 나갈 수도 있고, 필요하면 기차를 타고 가거나, 중간에 재미있는 곳이 있으면 멈춰 서서 밥도 먹고 바람도 쐴 수 있는 게 인생이다. 숙제를 마치듯이 쉼 없이 선택 없이 가야 할 길만 가는 게 아니다.

탐욕도 경쟁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쉽게 무소유의 삶을 살 수 없다. 대신 일회일비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묵묵히 내 페이스대로 가려는 것이다. 친구의 성공, 연애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씩 천천히 묵묵히 자신이 생각하는 약간 느리다 싶은 호흡과 속도로 가려고 한다. 그때까지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옆도 보지 않을 것이다. p.77

지속 가능한 최고의 솔루션은 자가 발전이다. 생격먹은 대로, 성질대로 살면서 만족할 수 있는 삶,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매일 느낄 수 있는 삶,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오늘이 시작되는구나'라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경험할 수 있는 삶, 남들이 볼 때 멋져 보이는 삶보다 내가 재미있고, 즐겁고, 나를 신나게 하는 삶이 진정한 자존감의 원자로가 될 수 있다. p.112~113

그게 우리 삶의 문제예요. 채워지지 않는 잔을 놓고 안달복달을 하니 경고등이 켜질 수밖에 없겠죠. 저도 그렇게 살았어요. 어느 순간 그 완벽함이란 결국 내 마음속의 허상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이 세상이 우리를 너무 열심히, 뼈 빠지게 일만 하게 만들기 위해 거는 최면 같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죠. p.174-175

버나드 쇼가 이렇게 말했죠. 세상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이기적인 병이다.
왜 행복을 소비하려고만 들고 생산할 생각은 하지 않는가. 멋진 말이라 가끔 써먹죠. 세상에는 행복을 생산할 줄 모르고 누가 갖다 주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죠. p. 249

평형은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면 집단이 제시하는 가치관에 자아가 매몰되어버릴까 봐 두려워 저항하게 된다. 그렇지만 막상 집단 밖으로 나오면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활량한 벌판에 서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분리된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연약함은 오롯이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계에 머무르게 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어느 한쪽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인생이다. p. 296


이 책을 보면서 나에 대한 진단도 한번 해보았다. 나는 느긋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뭔가를 하지 않고 가만히 며칠이라도 있으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 고문과 같다. 심지어 휴가 기간에도 끊임없이 페이스북을 들락거리며 글을 올려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왜 모두 탁 하고 놓지 못하는 걸까...나는 누구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며, 무엇이 나를 이렇게 조급하게 만드는 것일까. 한번 저자에게 상담이라도 받아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저자는 그런 나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나만을 위한 세 시간을 확보하라."고 말이다. 누구를 만나는 게 아니라 혼자 카페, 극장, 도서관, 공원 등이 어디든 좋다. 절대 혼자여야 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공상하고 명상하고 멍청하고 바보 같은 생각까지 모조리 다하는 시간 말이다.

지금 내 인생에 크게 불만이 없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가끔은 멈춰 서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트랙에서 벗어난다고 삶이 무너지진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좀 더 자신의 감정을 느끼도록 노력하고, 감정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진짜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러다 정말 얼어죽기 전에 말이다. 

p.s: 근데 왜 우리 동네에는 이런 카페가 없는거야 ㅠㅠ
이 책을 추천해주신 이지선 님(http://www.sunblogged.com/440)에게 감사를..더불어 하지현님의 트위터 주소까지!(@jhnha) 멘션 보냈더니 이렇게 답장까지 보내주셨다. 놀라운 SNS여~


심야치유식당- 당신문제는너무열심히산다는것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하지현 (푸른숲,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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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easysun 미도리님이 좋아하실 책이다 싶었습니다. 저도 이 책읽고 마음의 정화가 되었구요^^ 2011.07.18 13:22 신고
  • 프로필사진 주댕이 마음의 허기...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거라는 걸 지금 느끼고 갑니다~
    결국은 제 스스로 놓치 못하는 것들이 더욱 그런 공허함을 만들어내지 않나 ...
    라고 생각하며 오늘은 서점에 꼭 들르겠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2011.07.18 13:36 신고
  • 프로필사진 환유 저도 이 책 읽고 좋았어요. 리뷰를 쓸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저번에 작가님한테 노사이드카페가 진짜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혹시 몰래 숨겨놓고 혼자만 가시는 건 아니냐 트윗을 날렸더니,
    흐흐. 그렇진 않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도 왠지 그런 곳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에 허기가 지면, 정말. 찾아갔으면 하고요. ^^

    아참. "심야식당" 이라는 일본 만화도 있는데요-
    그 책도 괜찮답니다...
    2011.07.19 02:09 신고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1.08.01 11:46
  • 프로필사진 카이로스 한가한 주말을 이용해 심야치유식당을 읽었습니다 ^^ 실제로 이런 바가 있다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놀러갈 것 같네요 ㅎㅎ 2011.08.07 21: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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