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요즘 블로그에 영화 리뷰는 잘 하지 않는다. 차고 넘치는게 영화 분석 비평글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블로그에 남기는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인사이트만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이름하여 미도리의 내 맘대로 영화평. 


1. 지니어스(Genius) - 2016

1929년 뉴욕.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길들이고 ‘스콧 피츠제럴드’를 조력한 유명출판사 스크라이브너스의 최고 실력자 ‘퍼킨스’(콜린 퍼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작가 ‘울프’(주드 로)의 원고를 우연히 읽게 된 퍼킨스는 방대하지만 소용돌이와 같은 문체를 가진 그의 필력에 반해 출판을 제안한다. 

둘은 5천쪽에 달하는 방대한 원고를 밤새 줄여가며 문학에 대한 서로의 신념을 나누며 친밀해진다. 냉철하고 침착한 맥스와 야성적이고 열정적인 토마스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매개로 서로에게 끌린다. ‘지니어스’는 작가와 편집자의 천재성이 만나는 순간의 전율을 포착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편집자의 역할에 호기심이 생겨 재밌게 본 영화이다. 영화는 맥스와 토마스가 두 번째 작품을 퇴고하는 장면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선사한다. 토마스가 쓴 아름다운 수사의 홍수 속에서 본질을 찾아내려는 맥스의 노력. "이게 꼭 필요해?"라는 말을 끊임없이 내뱉는 맥스와 문장을 고집하면서도 끝내 맥스의 판단을 수용하는 토마스의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

역시 좋은 작가는 좋은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는 진리. 흙속의 진주를 캐내는 그런 기분이 든달까.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유유자적하는 노년의 헤밍웨이(아마도 그곳에서 노인과 바다를 썼겠지?)와 아내의 정신병으로 절필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를 만나는 장면도 흥미롭다. 



2. 다가오는 것들(L’avenir, Things to Come) -  2016

나탈리는 더이상 삶에서 다가올 것은 없다고 여길 무렵 25년을 함께 산 남편이 이별을 고하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이 일을 계기로 철학 교수로 아이들을 가르치 행복해 보이는 나탈리의 견고했던 생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탈리. 나 여자 생겼어.
그걸 왜 나한테 말해? 혼자 감춰둘 순 없었어?
그 사람이랑 살 거야.
언제부터 그랬어?
조금 됐어.
학생이야?
아니야. 당신은 모르는 사람이야.
평생 날 사랑할 줄 알았는데. 내가 등신이지!
평생 사랑하기야 하지. 그건 맞아.
집어치워.


"여자는 40이 넘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나탈리 엄마의 말. 나도 “늙고 뚱뚱해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나탈리 엄마의 고양이 ‘판도라’ 같은 처지가 된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향한 이 처우를 감내할 수 있을까? 노년에 가족이 아닌 온전히 혼자가 되었을때 과연 나는 그 자유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45년에 걸처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프랑스의 신화적인 여배우이자 이 시대 최고의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가 프랑스 신예 감독 미아 한센과 만났다. 2016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돼 최고작품상인 황금곰상 노미네이트 및 감독상인 은곰상을 수상했다.

영화에는 루소와 파스칼, 아도르노와 쇼펜하우어, 알랭의 철학 책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늘 손에 책을 들고 읽는 그녀의 모습의 인상적이다.
우리 인생에서 철학이 얼마나 실용적인 학문인가... 

"철학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행복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


  • 평생 나만 사랑할 줄 알았는데.. 내가 등신이었지!_나탈리

  • 20년 동안 남편과 나는 브람스랑 슈만만 들었어. 지긋지긋해.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떠나고, 남편은 가고, 엄마는 죽고, 나는 이제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완벽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_나탈리  

  • “원한다면 우리는 행복 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약 행복이 오지 않는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환영의 매력은 그것을 준 열정만큼 지속된다. 이 상태는 자체로 충족되며 그 근심에서 나온 일종의 쾌락은 현실을 보완하고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원할 게 없는 자에게 화 있으라.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_ 루소의 『신 엘로이즈』

  • 급진성을 이야기하기엔 난 너무 늙었어. 게다가 다 해본 것들이기도 하고. 응 나는 변했어. 세상은 나빠지기만 했지만 말야. 난 더는 혁명을 바라지 않아. 훨씬 수수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_나탈리(자신을 비난하는 제자에게) 

3. 컨택트 (Arrival) - 2016

이 영화는 천재감독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SF영화'였다. 유독 SF영화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런 내러티브와 완성도,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은 영화는 없었다. 게다가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아도 탁월한 지점이 많은 영화이다. 

"언어가 모든 문명의 초석이다."

언어분석에 탁월한 언어학자 '루이스'가 어느날 지구를 찾아온 12개의 우주선 '쉘'의 문을 열고 그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무기를 주다"를 "언어를 주다"라는 말을 오역하면서 세계 도처의 반감을 산다. 언어가 타인과의 의사소통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20세기 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의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빌뇌브 감독이 SF영화에 언어학을 접목하다니! 

외계인의 언어를 알게 되면서 과거,미래,현재의 생각을 공유하게 된 루이스는 이안과 결혼하고 낳은 딸이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된다는 것을 말면서도 미래를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던진 메시지는 바로 이것. 

"만일 당신의 미래를 알게 된다면 그걸 바꾸려고 할 것인가요?"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노미네이트. 여우주연상과 음악상 수상. 한번 들어보자. 




4. (あん, An): 단팥 인생 이야기 - 201

봄이 생각나는 영화를 뒤늦게 케이블 TV에서 만났다. 흐드러진 벚꽃나무와 그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혹은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이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전한다.  

가와세 감독은 배우들의 대사가 아닌 자연에 관한 상징적인 대사나 설정으로 주제를 드러낸다. 일본 영화답게 마음을 울리는 장면들이 있는 소박하고 잔잔한 영화이다. 단팥에 담긴 인생에 대한 이야기랄까. 


그저 그런 도라야키 가게를 맛집으로 변화시키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서 팥소의 달인인 도쿠에는 영화의 표표한 정서를 순식간에 전복시킬 비극적 비밀을 숨기고 있다. 나병을 갖고 태어나 고립된 삶을 살면서 50년 넘게 팥을 만들어 온 사연을 갖고 있었던 것. 전통 단팥빵인 '도라야키' 가게의 점장인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는 할머니가 손수 만든 팥소를 맛본 후 망설임 없이 도쿠에와 함께 일하기로 하고 그녀의 솜씨 덕분에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러다 도쿠에가 앓았던 병이 알려지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하나둘씩 끊기기 시작한다. 

누구나 한가지쯤 숨기고 싶은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외면할지, 함께 보듬으며 함께 살아갈지에 대한 영화라고 할까. 특히 도쿠에 할머니 역을 맡은 일본의 국민 배우인 기키 기린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라 더 반갑다.


  •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왔을 비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요.”_도쿠에(기키 기린)

  •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_도쿠에(기키 기린)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