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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좋아하고 그것이 작가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임경선에게 흥미가 생겼다. 

유년 시절을 일본, 미국, 남미와 유럽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면서 무국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아가 형성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하루키와 닮았고, 10여 년간 마케팅 매너저로 일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전업 작가로 전향했다는 점도 나의 흥미를 끌었다.

Yes24에서 연재하고 있는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이라는 칼럼을 간간히 엿보면서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그녀에게 워킹맘의 동질감도 느꼈다. 72년생이니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나와도 공통점이 꽤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여성 에세이를 통 사보지 않는 내가 <내가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을 집어든 이유에 대한 변명이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형성하는 다섯 가지 태도-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로 정의한 것을 보면서 나는 과연 나의 인생에 대해 어떤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인간관계는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정직하게, 세상과의 관계는 공정하게’ 

그녀가 좋아하는 것도 밥벌이는 엄연히 다르다는 냉혹한 현실을 말하면서도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의 중요성을 차분히 짚어가는 점도 마음에 든다. 한국의 보수적인 문단에서 여성 전업 작가로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 점인지, 엄마와 작가라는 두가지 사이에서  갈등할 때나 조직 안에서 있을 때와 독립했을 때의 부담감에 대한 이야기도 백번 공감이 간다. 

그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기꺼이 상처받으라'고 조언한다.
상처를 허락한다는 것은 사랑을 허락하는 것과 동의어이며, 어떤 사랑이든 사랑 그 자체가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새로운 사랑이 도래할 거라는 믿음, 이런 마음들이 타인에 대한 관대함을 낳고, 그 관대함이야말로 결국에는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힘의 밑거름이 됨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나한테는 이것이 최선이야, 라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용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일으킨 다음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에서 선만 긋는 것과는 다르다. 확고한 생각이나 단단한 가치관이 되어주는 것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체득된다. 생각이 행동을 유발하지만 사실상 행동이 생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고 정리해준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일단 그 상황에 나를 집어넣어보는 것이 좋다.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용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_p.18∼19 

나한테 마음의 문을 연 만큼 딱 그만큼만 나도 마음을 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선 그 누구보다도 내가 그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에서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인 것 같다. 사랑하면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가 있다. _ p.52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연스레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들이 있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_p.102~103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대개의 경우 '내가 아직은 잘하지 못하는 일'이고 그래서 그 분야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기까지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럴 때 '해야 하는 일'로 기초 체력 다지기를 하면서 그다음 단계로 '내가 제법 잘하는 일로 능력치를 올리고 그런 다음 '내가 원하는 일'과의 접점을 찾을수가 있다. _p.164

겸손한 주제 파악이 인간의 미덕일 순 있지만 삶을 팽팽하게 지탱시켜주진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내가 나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는 기분은 내가 생생히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나가는 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_p.168~169

친구 관계뿐만이 아니라 연애에 있어서도 거절을 잘할 줄 아는 것이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다. 내 마음을 줄 수 없을 때 상대에게 희망고문을 하지 않는 것, 나에게 마음을 주는 것에 기분이 우쭐해져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여지를 주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에는 단칼에 잘라버린 그 상대의 잔인함에 치를 떨어도 속마음을 파악할 수 없는 태도로 오락가락 애매하게 구는 그 사람이 훨씬 더 고약한 것이다. 아니다 싶으면 서로 확실히 NO를 말하고 오로지 내가 기꺼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YES를 하는 것. 어른으로서 꼭 갖추고 싶은 습성이다. _ p.227~228 

제가 어떤 인물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질 때를 보면, 그 사람의 태도가 좋아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나 우디 앨런 같은 경우에도요. 그분들의 작품도 좋지만, 그 사람 자체도 못지않게 좋은 거예요. 일단 그분들의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 성실하게 꾸준히 일하는 작업 방식이 좋죠. 소탈한 옷차림도 좋고요. _p.245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예전에 갖고 있던 생각들의 다른 측면도 바라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기존에 가졌던 생각들이 틀렸다 맞았다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구체적인 어떤 부분은 이런 다른 측면이 있었구나, 하고 겸손하게 깨달으면서 수정 보완 해나가는 거죠. 자기 내면이 단단해지려면 디테일에서도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문제를 다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자잘하게 썰어서 하나하나 곱씹어볼 수 있는 어떤 치밀함, 집요함 그리고 신중함이 필요할 것 같아요. _p.294


그녀처럼 묵묵히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고 싶다.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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