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9년 연말에 <보통의 존재>를 읽고
2015년 연말에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었다. 
그의 책은 등장하는 배경도 연말이긴 하지만 어쩐지 혼자있기 요즘 시기와 잘 어울린다. 

2009년 <보통의 존재>는 출간 6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줄지 않고 팔린다니 대단하다.
2013년 두번째 장편 소설을 4년씩이나 걸려 겨우겨우 탈진해 내놓은 후  
2015년 2년 뒤에 세번째 작품인 단편집은 단 몇개월만에 술술 써내려가 마흔 넷에 내 놓았단다.

# 1. 보통의 존재 

언니네 밴드로 음악 활동을 하던 그가 서른 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어느날 사랑과 건강을 잃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한 이후' 노후대비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권유받고(내가 애정하는 페이퍼 편집장인 황경신과 김원으로부터!!!!) 작가로 남은 생을 결심한 후 첫번째 쓴 책이 <보통의 존재>였다. 

"전 요즘 되게 초조해요. 시간이 없으니까. 정년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사십이 넘어서 밴드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그런 생각 하면. 3, 4년마다 앨범을 한 장씩 내왔는데, 지금 서른여덟인데, 그럼 앞으로 몇 장의 앨범을 더 낼 수 있을까. 서른여섯까지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러다 일곱이 딱 되니까 의식이 되고. 그것 때문에 더 결사적으로 매달린 것도 있고. 두려운 거죠. 내 안의 세포가 이미 계속 죽어가고 있으니까. 그런 순간이 공포로 오는 거죠. 정말 가진 거 쥐뿔도 없는데, 음악 하나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인데, 어느 날 그런 벽을 느끼게 되면 모든 게 다 사라졌다고 봐야겠죠."

"그렇게 되면 절망할까?"

"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전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요."

PAPER 2008년 11월호 / 뮤지션 언니네이발관 이석원 

인터뷰어 황경신
# 출처 : https://www.facebook.com/MagazinePaper/posts/416450628458923


처음에는 그가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기타인 이석원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음악을 하는 분이 책을? 

당시 그가 <보통의 존재>를 내세우며 (우리 모두가 그렇듯)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일상을 당황스러울만치 솔직하게 드러내 담담하게 전하면서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그는 스스로를 보통의 존재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가 쓰는 글은 보통이 아니다.
자신과 타인, 관계, 가족, 친구, 이혼,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등 남들은 흔히 지나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예민하게 잡아내는 작가적 감수성을 지녔으니 말이다. 

그의 인명색인표에 등장하는 수많은 실명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실화인지 픽션인지 알수 없지만, 결혼, 죽음, 연애, 이혼, 가족, 이웃과의 작은 갈등 등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보통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꽤 큰 위로를 안겨준다. '그게 뭐 어때서?'라며. 이것이 이석원이 꾸준히 소비되는 이유다.



2009/12/28 - [Bookmark] - 2009년 마지막 행운과 잃어버린 나의 책

보통의 존재
카테고리시/에세이
지은이이석원 (달, 2009년)
상세보기


# 2.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작가는 "뭐해요?" 라는 말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라고 했다.
나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무엇일까? "잘 지내?" "밥먹었어?" 정도? 
일단 제목이 출판사에서 제안한 거라는데 무난한게 썩 와닿지는 않는다. 
(작가의 제목은 '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였다고)

첫번째 산문집 이후 6년 만에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소설적 형식을 빈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을 갖고 그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간 4년을 소설을 쓰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여전히 블로그며 노트 등에 매일매일 글을 쓰면서 말이다. ( ☞ 이석원 블로그 바로가기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마흔을 훌쩍 넘긴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소개팅을 하고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소설과 에세이를 합쳐 놓은 것 같달까. 스토리는 김정희라는 이름의 포르쉐를 모는 34세 이혼녀(아이 딸린)과의 다소 속물적인 연애담인데 읽다보면 마치 홍상수의 영화처럼 흡입력이 꽤 있다. 

'나'라는 주인공은 책에 등장하는 친구 나리의 말처럼 "일생 아이 같은 놈"이라고 할 정도로 미성숙하고 다소 무책임해 보이기도 하지만 뭐, 인생을 다 아는 어른처럼 구는것도 매력없잖아.

나는 뭔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다시 말해 지금처럼 글을 쓸 때, 난 단순히 마음이 얇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의 모든 판단력이 거의 ‘금치산자’ 수준으로 떨어지고 자신감은 제로가 되며 외모 또한 그나마 볼 것 없는 본판에서 정확히 반의 반 토막이 나버린다. 한마디로 어떤 여자도 좋아할 수 없는 무 매력의 남자가 되는 것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19쪽) 

그래도 중간중간 그가 내뱉는 문장은 단순하고 무덤덤하지만 마음을 어루만지는 무언가가 있다.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
아무도 찾지 않고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을 바라며
살아온 내가 어느날 속삭였지 나도 모르게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 174쪽) 

이 책을 잡은 날 새벽 3시까지 한번에 다 몰아 읽었다. 그걸로도 이 책의 쓸모는 충분히다.

인간은 결국엔 혼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혼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봤을때

책의 가장 위대하고도 현실적인 효용성은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람들고 함께 있을 때 못지 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욱 풍요로운 순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237쪽) 

우리는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결국 믿을 것은 오롯이 자신 뿐이라는 결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런 결론.

나의 결핍은 친구나 가족, 연인이 메워줄 수 없다.
그들은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며
그들 자체로 각자의 결핍을 스스로 메워가야 하는
독립적인 존재들일 뿐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316쪽)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