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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찬욱보다는 봉준호를 좋아한다. 이번 영화의 제작자인 박찬욱과 감독인 봉준호가 만났다. 봉준호의 전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은 흥행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다. 나는 그가 '괴물'(2006), '마더'(2009) 등에서 보여준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과 특유의 감성을 좋아한다. 현장에서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빈틈없는 연출과 도처에 숨겨준 복선, 탄탄한 스토리도 내가 그를 신뢰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이전에 많은 한국영화 감독들이 헐리웃 진출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얻은 것과 달리 봉준호 감독 만큼은 한국을 벗이나 글로벌 시장에서도 꼭 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설국열차'를 보았다. 

권태를 모르는 순수한 액션 스릴러 영화      

"Keep your place." - 네 자리를 지켜

영화 초반, 반항하는 꼬리칸 사람들을 진압하기 위해 메이슨(틸다 스윈턴, 총리역)이 반복하는 말이다. '누구도 신발을 머리 위로 쓰지는 않는다' 며 반항이라도 했다가는 팔 한쪽, 다리 하나 내놓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앞 칸에서 원하는 인력인 어린 아이들, 럭셔리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바이올린 연주가도 꼬리 칸에서 착출해도 참아야 한다

반항하는 '설국열차'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CW-7이라는 냉각제를 과도하게 살포하면서 기상이변으로 지구가 꽁꽁 얼어붙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열차에 가까스로 올라 타 목숨을 유지한다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스토리다. 

꼬리 칸에 무임승차인 사람들은 빈민굴과 같은 곳에서 배고프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간다. 주식으로 공급되는 '단백질 블록'(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면 도저히 먹지 못하는)이 제공되기 전 한 달 동안은 서로의 인육(심지어 어린 아이까지)을 먹을 정도로 처참했다. 반면, 선택된 자들이 살고 있는 앞쪽 칸은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술과 마약(크로놀)에 취해 산다. 작금의 우리 사회와 다르지 않다. 체제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살고, 순응하는 사람들은 중산층은 착취당하면서도 안락함을 버리지 못하고(식물칸의 뜨게질하는 여인처럼), 이들에게 제자리를 지킬 것을 강조하며 통치하는 권력층은 두려움을 심어준다.   

1, 2. 꼬리 칸의 무채색과 비교되는 앞 칸의 화려한 색감.

신분제와 질서유지, 중요한 것은 '균형'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인도의 '카스트'제와 같은 신분제 사회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분제에 도전하는 것은 철저히 금기시되었고, '체제유지', '질서유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본보기로 희생됐다. 역사적으로 많은 혁명이 시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양으로 사라졌다.

이 영화에서 권력의 앞잡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총리역의 메이슨은 '신의 한수'로 불린다. 17년 간 열차의 1인자 윌포드(에드 해리스)의 오른팔 노릇을 해온 총리 역의 메이슨의 (틸다 스윈턴)의 존재감이 엄청나다. 이 역할을 위해 굵은 뿔테 안경, 영국 요크셔 악센트(로 미뤄보아 노동자 출신)와 들창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외모의 변신도 시도했다고 하니 대단한 배우다. 메이슨은 연설을 할 때마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질서(order)'라고 강조하곤 하는데 이 영화의 주제와 맥락이 닿는다. "옆으로 새면 죽는다"라며. 

열차가 달리고 그 속에서 폭동이 일어나면서 고통스럽고 잔인한 장면을 굳이 부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봉준호 감독은 그간의 영화에서 보여준처럼 여기서도 날 것의 폭력적인 이미지를 많이 등장시킨다다. 몽둥이와 도끼로 싸우기, 생선 배 가르기, 팔 자르기, 톱니바퀴에 끼어 죽이기, 횃불 전투 씬까지 등 많은 원시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갇힌 공간에서의 공포와 인간의 잔인함을 드러내고자 한 듯하다.   

꼬리칸부터 엔진실까지 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액션의 쾌감  

꼬리칸에서 17년의 긴 세월동안 폭동을 준비해 온 젊은 지도자 커터스(크리스 에번스),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 '크로놀' 중독자로 감옥에 가있던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와 기차에서 태어나 흙이라곤 본적도 없는 그의 딸 요나(고아성)의 도움으로 열차의 맨 앞칸인 엔진실을 향해 돌진한다. 이 영화에서 남국민수와 요나의 비중이 적은 듯하지만 결국 이들이 구원자임을 알게 되면 므흣한 미소가 지어진다.^^

꼬리칸에서 맨 앞칸까지 질주한 그곳에서 커티스는 상상도 못한 충격적인 반전을 만나게 된다. 결국 이런 모든 폭동이 결국은 기차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 이것은 결국 자본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프랑스 만화를 원작을 4년의 프리 프로덕션 기간, 1년간의 감독 직접 각색 기간을 거쳐 80% 이상 해외 자본과 스탭으로 제작된 영화다. 한국인 스태프라곤 홍경표 촬영감독과 배우 송강호, 고아성 정도. 이 영화가 그동안 봉준호의 색깔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살인의 추억', '괴물' 등에서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던 봉준호 감독이 이제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설국열차' 속 세상은 곧 현대 계급 사회의 축소판이자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인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동안 독창적이고 독립적이고 가난한 영화들을 제작해 온 그가 전 세계에 배급하는 대규모의 블럭버스터(중에서는 작은 규모지만)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듯한 '설국열차'가 대규모 배급사인 CJ에 의해 스크린쿼터제 축소를 반대하던 그가 스크린 독과점을 통해 조만간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 가까이를 점유한다는 것은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뺏고 '균형'을 깨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팬으로서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나는 그의 직진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덧]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천만 돌파는 큰 의미없다고 말한 점 멋지다. 역시 그는 흥행보다는 영화 그 자체를 사랑하는 감독임이 분명하다. 

"잔인한 여행, 모두의 목적지는 한 곳. 공간을 집어삼키며 가고 또 간다. 그 이름은 설국열차. 언제나 죽음을 마주한다. 권태를 모르는 설국열차." - 설국열차 원작 중에서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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